김유정이라는 작가에 대해 처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살펴 보았다.
여러 편이 한편 인듯 상상이 겹치는 부분도 많았다. 아마도 '점순이'라는 인물이 여러 작품에 등장하고 배경 또한 엇비슷해리라.
농촌을 배경으로 한 해학적 요소, 친근한 사투리와 순수 우리말로 생동감이 돋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하기 그지 없는 현실에 대한 비참함과 더불어 그의 삶이 그대로 작품 속에 녹여져 있어, 그냥 웃고만 넘기기에는 찐한 안쓰러움이 있었다. 누구나 한번 쯤 읽었던 《소낙비》에서는 남편이 도박 비용 때문에 아내에게 매음을 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진다. 일제 강점기만큼이나.
김유정의 일생에 대해 어떤 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연애 소설이나 쓰냐고 책망하기도 하고, 기생 박록주에 대한 짝사랑(일명 ‘스토커’에 이르는)으로 마음을 앓기도 혹은 들병이와 어울리기도 했으며, 걸핏하면 싸움판을 벌이는 등 소설만큼이나 그의 일생도 해학적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대한 열정과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 문학의 대표 소설 작가가 되었다.
독자들도 김유정의 작품을 다시 또는 새롭게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낙비》, 《금 따는 콩밭》, 《산골나그네》, 《봄·봄》, 《동백꽃》, 《아내, 안해》, 《총각과 맹꽁이》, 《따라지》, 《땡볕》을 선별하였다.
김유정(金裕貞, 1908.01.11~1937.03.29)은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별도의 아호는 없다.
한국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강원도 춘천군 증리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1916년부터 1919년까지 이웃 글방에 다니면 《천자문》, 《계몽편》, 《통감》 등을 배우고, 붓글씨를 익혔고, 에울 입월초등학교를 거쳐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이름을 나이(羅伊)로 바꾸었다가 3학년 때 다시 본래 이름으로 되돌렸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안회남(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저자 안국선의 아들)과 친하게 지냈으며, 야구·축구·스케이팅·권투·유도 등의 스포츠와 책 읽기, 영화 감상, 바이올린 연주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겼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 김유정은 4살 연상의 기생 박록주(朴綠珠)를 보고 한눈에 반해 밤새워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혈서를 전하긷도 하는 등 2년여 간의 짝사랑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폐인 생활을 하다가 늑막염과 치질에 걸려 고향 춘천으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농민들의 순박한 마음과 가난한 삶을 직접 보았다.
1931년 다시 상경한 김유정은 경성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곧 퇴학했고, 1934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1935년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29세로 요절하기까지 불과 2년 동안 《소낙비》, 《금 따는 콩밭》, 《산골나그네》, 《봄·봄》, 《동백꽃》, 《아내, 안해》, 《총각과 맹꽁이》, 《따라지》, 《땡볕》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