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자책 출판을 하면서 한국문학을 읽는 재미 또한 무시할 없는 즐거움이다.
김동인은 현실 인식을 토대로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기 보다는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고 살아가야 하는 지를 잘 표현하였다.
작품 속에서는 당시의 현실이 사회적으로나 신분적으로나 엄연히 냉엄하게 나뉘어져 있음을 너무나도 잘 보여 준다. 특히《감자》를 읽다보면, '복녀'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바르게 자랐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물질적 사회에 쉽게 동화되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복녀'가 벌어오는 돈에 만족해 했던 그 남편을 지탄해야 할까? 굳이 선택해야한다면 무능한 남편, 가진 힘을 애용하는 작업장 감독 또는 왕서방에게 잘못된 화살을 돌려야 마땅하지 싶다.
김동인 작품 중에서 《발가락이 닮았다》,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붉은 산》, 《망국인기》을 선별하였다.
김동인(金東仁,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평양에서 태어났고,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이며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숭덕소학교를 거쳐 1912년 숭실학교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중퇴한 후 1914년 도쿄학원 중학부에 입학했지만, 도쿄학원의 폐쇄로 메이지 학원 중학부 2학년에 편입했다. 유학 중 그는 이광수, 안재홍, 신익희 등과 친구로 지냈다.
1920년대부터 가세가 몰락하면서 대중소설을 썼고,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시어딤 창작집'(창조사) 발간, 동아일보에 첫 번째 장편소설 '젊은 그들(1930.9~1931.11)'을 연재했다. 한편 신여성의 자유 연애, 여성 해방 운동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그는 풍자와 조롱을 잘 하였다. 1932년 발표된 단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읽은 염상섭은 장가를 간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여겨 동인과 설전을 벌였다고도 하며,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삶의 마지막은 사업 실패로 인한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와 술로 지탱하다 1951년 1월 5일 서울 하왕십리동의 자택에서 52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