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은 1982년에 상영된 19세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나도향의 소설이 원작이다. 《뽕》은 1920년대 가난으로 찌든 한 여자가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몸을 팔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잘 그려낸다.
땅딸보 노름꾼인 김삼보와 몸을 쉽사리 허락하는 김삼보의 아내 안협집, 머슴인 삼돌이 사이에 벌어지는 애욕의 비극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안협집은 인물은 봐줄만 하지만 정조관념이 없고 돈만 아는 여자로 노름에 미쳐 집안을 돌보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이집 저집 동리로 다니며 품방아도 찧어 주고 김도 매주고 진일도 하여 주며 얻어먹다가 어떤 집 서방에게 몸을 빼앗긴 후 쌀 말과 피륙 두 필을 받아 보니 이처럼 좋은 벌이가 없음을 깨닫고 차츰차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스스로 몸을 팔고, 뒷집 머슴 삼돌이는 음침하여 동리의 반반한 계집은 모두 건드려 보았으나 안협집만은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어느 날 드디어 안협집과 뽕 밭에 갈 기회가 생기자 삼돌이는 안협집에게 수작을 걸어보지만 오히려 뽕지기에게 안협집만 빼앗긴다. 화가 난 삼돌이는 감삼보에게 안협집의 부정한 행실을 일러 바치고, 김삽보는 안협집을 사정없이 마구 때린다. 평소처럼 김삼보는 며칠 후 또 집을 떠나고, 안협집은 동리집 공청 사랑에서 평소처럼 잠을 잔다.
나도향의 대표작 3편《뽕》,《물레방아》,《벙어리 삼룡이》는 빈곤, 도덕적 윤리, 냉혹한 현실 등 사회문제를 객관적인 그려낸 사실주의적 작품들이다.
소설가 나도향(1902.3.30 ~ 1926.8.26)의 본명은 경손(慶孫), 호는 도향(稻香), 필명은 빈(彬)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후 경성의전(京城醫專)에 진학했지만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조부가 학비를 보내지 않자 생활고 때문에 되돌아왔다
이상화, 박종화 등과 함께 1921년《백조(白潮)》 동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을 발표하자 나동향은 천재 작가로 불렸다.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幻戱)》 등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고, 《녯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17원 50전》 《행랑자식》 《여이발사(女理髮師)》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1925년에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뽕》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등 작가로서 완숙의 경지에 접어들려는 때 나동향은 급성 폐병으로 요절했다.
작가로서 활동한 시간은 고작 5년에 불과했지만 《뽕》《물레방아》《벙어리 삼룡이》 등 2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27년 《현대평론》 8월호에는 나도향의 1주기를 맞아 일본에서 함께 지냈던 염상섭, 정인보, 이은상 등 당대 문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다양한 글을 실었다.
김동인(金東仁)은 나도향을 이렇게 평가했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