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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시집

'김영랑' 이라는 시인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바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서름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을 놓고 모순된 가치의 표상이다, 완성과 파괴의 순환을 보여준다 등의 해석을 하고 답을 찾기에 바빴다. ..
'김영랑' 이라는 시인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바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서름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을 놓고 모순된 가치의 표상이다, 완성과 파괴의 순환을 보여준다 등의 해석을 하고 답을 찾기에 바빴다. 모란이 해마다 피어나고 또 떨어져버리고 피어나기까지 내 기대, 내 바램의 시간은 다시 오지만 이로 인한 행복도 끝이 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김영랑의 시는 그냥 스쳐가는 스틸샷(정지된 화면)에 내 감정을 툭하고 던져 놓고 무심히 가는 느낌을 받는다. 설명도 해석도 필요 없이 단지 우리가 가진 숙명에 대해 받아들이는 모습이 선명히 느껴진다. 하지만 포기하고만 말아버리는 나약함은 절대 아니다.

쓰라렸던 일제강점기 그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특히《언덕에 바로 누워》《뉘 눈결에 쏘이었소》《숲 향기 숨길》《저녁때 외로운 마음》《물 보면 흐르고》를 읽은 후 오랜 동안 그 마음이 내게도 남았다.
김영랑(金永郞, 1903.1.16 ~ 1950)의 본명은 윤식(允植)이고, 전라남도 강진(康津)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서울 기독교청년회 관에서 영어를 배운다.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정지용 등과 문학적 교류를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구두 속에 선언문을 감추고 고향 강진에 갔다가 발각되어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했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최승일과 교류하다 최승일의 누이동생(최승희)와 사귀기도 했다.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창간호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박용철은 김영랑에게 시 쓰기를 권유하고 그의 시를 모두 외울 정도로 아꼈으며, 1935년 11월 시문학에서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김영랑의 삶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의 작품 속에도 슬픔과 한, 외로운 방황 등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 신사참배(神社參拜)를 끝까지 거부했으며, 8·15광복 후 보수파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지만 친일파들의 행태에 질려 힘들어하다 적응하지 못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국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덕분으로 비교적 여유롭게 살다가 1950년 9월 29일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사후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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